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김홍희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는 기존의 지식과 경험, 즉 인식의 틀을 제거한 상태에서 세계를 볼 수 있을까 하는 실험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패러다임을 벗어나 사물을 인식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미 언어와 사고는 세계가 규정한 형식 안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결국 나의 사진은 세계와의 ‘진정한 조우가 불가능함’을 말한다.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는 우리의 인식 작용인 패러다임을 제외한 상태로 사물을 보면 어떻게 보일까 하는 것을 실험해 본 결과물이다.
우리가 본다는 것은 눈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며 지금까지 축적된 경험과 외부 세계의 지식을 통해 사물을 인식한다. 이러한 축적된 경험과 외부 세계의 지식을 제외한 채 세계를 보면 어떤 식으로 보이게 될까 하는 것이 나의 주제였다.
그런데 이 시도는 처절하게 깨졌다. 우리는 패러다임을 버리고 사물을 인식할 수도 없거니와 패러다임을 버릴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생각하는 도구가 이미 언어이고 이 언어로 생각을 한다는 것은 이미 세계가 규정한 형식과 내용을 가지고 사물과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이 전시의 제목을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라고 한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이전의 지식과 경험 없이 사물을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고 더불어 지금까지 내가 사물을 본다는 것은 외부 세계의 지식과 경험의 축적으로 보는 것이니 진정한 나 자신이 세계와 조우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나 사진은 세계와 조우가 불가능 하다는 뜻이다.
나는 프로그래밍 된 채로만 세계와 만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프로그래밍 되기 전의 나는 아무 것도 볼 수가 없고 아무 것도 아닌 것이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