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마을 사람들, 인도 자리아
권학봉
백 년 넘게 지하 석탄이 타오르는 자리아 마을은 생존을 위해 환경을 파괴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땅이다. 정부의 지원 없이 유독한 공기와 물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낸다. 이 작업은 그들의 현실을 상업 사진의 언어로 기록하며, ‘그들’과 ‘우리’ 사이의 거리감을 시각화한다.
권학봉
백 년 넘게 지하 석탄이 타오르는 자리아 마을은 생존을 위해 환경을 파괴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땅이다. 정부의 지원 없이 유독한 공기와 물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낸다. 이 작업은 그들의 현실을 상업 사진의 언어로 기록하며, ‘그들’과 ‘우리’ 사이의 거리감을 시각화한다.
인도는 고급스러움과 극심한 빈곤이 공존하는 나라다.
그 중심부에 위치한 자리아(Jharia)라는 마을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백 년 넘게 불타고 있는 지하 석탄층 위에서 살아간다.
이곳의 땅은 이미 사람이 살 수 없는 ‘불모지’여야 하지만, 오히려 더 많은 이들이 버티며 살아가고 있었다.
정부와 광산 회사는 이들을 이주시키려 했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그 정책을 거부한다.
이주란 곧 생존 기반을 잃는 것이고, 국가의 보호 없이 떠나는 삶은 사형 선고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매일 유독 가스를 견디며 석탄을 캐거나 훔치고,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술을 세대 간 전승해왔다.
그들은 말 그대로 죽음의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생존을 위해 환경을 파괴한다.
그 현실은 비극이지만, 우리 역시 다르지 않다.
정도만 다를 뿐, 모두가 생존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며 살아간다.
타오르는 석탄과 그 위에 쌓인 수많은 숯바구니, 질식해가는 아이들과 사람들.
이들의 모습은 결국 우리 삶의 구조적 모순과 자본주의의 부조리함을 반영한다.
나는 이 작품에서 상업사진 기법을 차용했다.
인공 조명과 디지털 후반작업을 통해 자극적이고 황폐한 현실을 차갑고 세련된 이미지로 시각화했다.
이런 시각적 거리감은, 현실과 이미지 사이의 간극일 뿐 아니라, 그들과 우리, 로고스와 파토스 사이의 간극을 상징한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환경을 파괴한다. 우리는 어떤가.
이 사진은 그 질문의 시작이다.
2014년 가을, 권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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