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힝야 난민의 이야기

권학봉
이 작업은 방글라데시 난민캠프에 정착한 로힝야 난민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삶과 기억, 그리고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진심을 담아낸 기록이다. 표면적인 언론 보도 너머, 작가는 제3자의 입장에서 로힝야 문제의 역사적·정치적 맥락을 조명하며, 국적과 권리를 박탈당한 이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전하고자 했다. 이 전시는 단순한 고발이 아니라, 우리가 ‘정의’라는 개념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를 묻는 조용한 시선이다.

로힝야 문제를 단순히 식민지 시절의 앞잡이 문제로 치부하며, 냉소적으로 극단화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태도는 재고되어야 한다. 우리는 미얀마의 아라칸 왕국과 꼰바웅 왕조, 그리고 영국 식민 지배 이전의 역사적 맥락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결국 독재 군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앵무새가 될 수 있다. 제3자의 입장에서 로힝야와 미얀마의 문제를 보다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단지 자신들이 태어나고 자라온 미얀마 라카인주로 합당한 국적을 가지고 돌아가고자 할 뿐이다. 이 작업은 그들의 가장 단순하면서도 절실한 바람에서 출발했다.

이번 작업은 방글라데시 난민캠프에 정착한 로힝야들을 직접 만나, 그들이 실제로 어디서 살아왔고, 무엇을 잃었고, 어디로 돌아가고 싶은지를 묻고 들으며 촬영한 기록이다. 대부분은 3대 이상 라카인주 인근에 정착해 살아온 이들이었고, 자신들의 마을 이름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미얀마(버마)가 라카인 지역을 완전히 통치했던 시기는 18세기 후반 약 40여 년에 불과하며, 17세기 포르투갈의 기록에도 이 지역에서 무슬림, 힌두교도, 불교도가 함께 살아온 흔적이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를 불법 이주민이라 낙인찍고, 국적을 박탈했으며, 그 결과 현재 수십만 명이 국적도 없이 국경을 넘은 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는 유엔이 설립된 이후 최악의 소수민족 정책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로힝야가 바라는 것은 거창한 보상이나 재산이 아니라, 다른 국민들처럼 살해당하지 않고, 재산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는 국적의 인정이다.

미얀마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이다. 인터뷰한 모든 로힝야들이 말하길, 미얀마는 그들의 고향이며, 방글라데시는 외국이라고 했다. 생명과 재산의 보장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낯설고 고단한 난민캠프를 떠나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미얀마는 인종청소나 다름없는 소수민족 탄압을 멈추고, 교육과 제도를 통한 포용과 통합을 시도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런 방식의 폭력적 소수민족 해결책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기본으로 하는 국제사회의 역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만약 이 문제를 국제사회가 묵인한다면, 비슷한 방식이 다른 나라에서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누구나 특정한 조건 아래에서는 소수자가 될 수 있으며, 그에 대한 보편적 연대는 우리가 지금껏 지켜온 가치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이다.

내 사진이 누군가의 시선을 이들에게 잠시나마 머물게 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사진은 말보다 느리지만, 더 멀리 가는 언어이기도 하니까.

2019년 권학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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